이동국 선수의 미들스브로 행을 놓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습니다. 선수로서의 이동국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그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선수도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도대항 전국 축구대회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동국은 고교 3학년 때, KBS 배 춘계 고교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 를 석권하면서 점차 그 이름을 알려 나갑니다. 1998년 월드컵 대표로 깜짝 차출되기에 이르지요. 당시 네덜란드에게 개관광을 당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었던 것이 바로 교체 출전했던 이동국 선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월드컵 이후 청소년 대표로서 출전한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5골 2도움으로 득점왕에 오르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대형 스트라이커로서 그 입지를 더욱 명확하게 굳힙니다. 특히 이나모토, 오노 신지, 나카타 코지, 오가사와라 등이 포진하면서 이른바 ‘골든 제네레이션’ 이라고 까지 오버했던 일본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후반 30분 1:1의 동점상황을 깨는 환상의 터닝슛은 이동국이 스트라이커로서 가진 능력이 어떤 것이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보여준 한 방이었습니다.




아울러 포항에 입단하면서 데뷔한 K리그 무대에서는 10골을 기록하며 신인왕도 차지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그의 K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1999년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도 대표로 참가하지요. 포르투갈, 우루과이, 말리와 한 조가 되었으나, 포르투갈, 우루과이에게 연달아 패하고 말리에게만 1승을 거두면서 결국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정작 일본은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었던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아시안 컵, 시드니 올림픽에도 역시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됩니다. 특히나 아시안컵에서는 부상당한 상태로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경기에 출전합니다. 해트트릭까지 기록하면서 대회 6골로 득점왕에 오르기까지 합니다. 98년 이후부터 2000년 까지의 이동국은 지나친 혹사가 아니냐는 평가를 들을만큼 모든 국가 대표급 대회에 차출되어 출전합니다. 2001년 독일 베르더브레멘에 진출하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6개월만에 다시 국내 리그로 복귀하게 되지요.

 

기대가 컸던 만큼, 스트라이커로서 부족했던 부분을 지적당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극과 극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엔트리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2002년의 영광을 뒤로 하고 상무에 입대하게 됩니다. 골대 앞에서 어슬렁거린다. 줏어먹기나 하는 선수다. 들어가는 건 뽀록이다. 골대 앞에서 결정력이 없다. 수비에 적극 가담안한다. 등등뭐 다 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평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이동국 대기권돌파 슛 동영상은 꽤 유명했죠. 가벼운 조크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네이버에서 이동국 대기권 돌파 라는 검색어로 동영상 검색을 해보면 맨 처음 나오는 동영상의 설명이 이런겁니다. 

 

미친넘 저게 국대라고 

 


                            <플레이 버튼을 누지르세요>


동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런 식으로 흘러나온 볼을 역으로 움직이면서 터닝슛 한다는 거 쉬운일 아닙니다. 헌데 그거 한 방 잘못 맞았다고 내내 웃음거리가 된거죠. 물론 다른 국가 선수들의 어처구니 없는 슛들을 여러 제목을 붙여가며 희화한건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런 동영상으로 선수 자체를 폄훼해버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여왔습니다.


물론 욕 먹을 수도 있습니다. 헌데 이정도로 지금까지 욕먹어 온 선수 아마 드물겁니다. 역대로 우리나라 축구에서 무엇보다 골 결정력이 있는 대형 스트라이커에 대한 기대는 어느 포지션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덕택에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으로 이어지는 9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계보에서 축구 팬들과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선수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제대로 욕 먹었던 황선홍 선수는 부상의 불운을 극복하고 2002년 월드컵에서의 한방, 그리고 부상 투혼으로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당부분 불식시키게 되었습니다만, 그 사이 황선홍에게 쏟아졌던 악평과 비난은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최용수 선수는 올림픽 대표 시절의 화려한 명성을 지속시키지 못해 많은 축구팬들이 실망했었습니다. 오히려 J-리그에서는 대단한 득점력을 보여주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국대에서의 활약이 선수 평가의 주요 판단 근거가 되는 국내 축구의 현실상 기량만큼의 평가는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한 이동국 선수의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된 이동국 선수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월드컵 진출의 꿈을 키우지만, 예상치 못했던 부상으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없게 됩니다.

 

큰 부상에서 힘겹게 복귀하여 이제 새로운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보내주는 구단의 입장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프랜차이저로 이동국을 키워왔고, 독일 보내줬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도 팀의 간판을 보내는 데 너무 헐값에 넘기는 것도 찜찜할 겁니다. J리그, 국내 타 구단 이적이 아니라면, 적극 지원하겠다고는 했지만, 당장 내 것 나가 떨어지는데 아쉬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국제룰에 의한다면 보스먼 룰 이라고 해서 현재 이동국 선수는 원 소속팀인 포항의 동의가 없어도 이적료 없이 이적할 수 있습니다만, 또 요상한 국내 룰은 그걸 허용치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포항이 당장의 손익을 따지기 보다 먼 미래를 대승적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동국 EPL 진출하는 거 허용했다고 포항 서포터스들이 포항 응원하는 거 중단하겠습니까? 아는 선수 없다고 포항 시민들이 축구 보러 오는 거 그만둘까요? 다른 스타를 추가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선수의 미래까지 배려하는 좋은 구단이라는 좋은 이미지까지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억지로 이적료를 높게 불러 이적을 좌절시키고 그 선수 다시 자기 팀에 주저앉혀봤자 선수에게도 팬들에게도 좋은 소리 들을리 없습니다.  

 

이동국 개인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습니다. 올해 나이로 스물 아홉,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과 기량을 알릴 수 있는 월드컵은 아직 3년이나 남았고, 더 이상 나이를 먹으면 해외무대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겁니다. 비근한 예로 안정환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국내 선수에게는 터부시되어 있는 입단 테스트 마저도 기꺼이 받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아깝고 안타까운 선수의 마지막 도전입니다. 부디 좋은 소식으로 이적이 마무리되고, EPL 에서 좋은 활약 펼치는 이동국이라는 이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국에 대한 평가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을 엮어봅니다. 모두가 사실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과장된 평가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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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Everything 트랙백 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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